내 심장은 꽤 자주 시큰거린다. 언제냐 하면,
좋은 예술 작품을 만났을 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지는 예술 이론/미학을 공부할 때, 자꾸만 질문하고 싶은(이야기로 속이 꽉 찬) 사람과 대화할 때, 멋진 공간을 마주할 때, 내 삶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볼 때…
대체로 이런 때다. 예시를 들기 위해 앞선 긴 경험담이 필요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앞으로 자주 쓸 것 같다. 사실 줄줄 말하고 싶은 거 꾹 참고 짧게 쓴 거다. 맛보기랄까?)
그러나 심장이 잠잠하던 시기가 있다. 때는 2021년 10월쯤부터 22년 1월까지다. 나는 1년 정도 미술품 판매 회사의 홍보팀으로 근무했다. 좋아하는 것에 관해 떠드는 것을 즐기는 내 성격에는 홍보 업무가 딱이라고 생각했다. 판화나 아트 상품을 홍보하는 콘텐츠를 만들며 입사 초반까지는 즐겁게 일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기대와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계기는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든 회의감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야 그에 맞게 콘텐츠를 만들고, 홍보를 할 수 있으니 트렌드를 잘 살펴야 했다. 트렌드 파악을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지금-여기’ 사람들에게 눈에 띄기 위한 가치를 뽐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텅 비어있는 것들이 널려있었다. 예를 들면, 모든 브랜드가 팝업을 여는 시대이다. 여기서 ‘팝업스토어’란? 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인터넷 팝업창 같은 스토어이다. 찰나의 순간에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니 얼마나 튀고 싶을까.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덧붙이고 광을 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힙’함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비슷한 결로 세상에 나온다. 그리고 나 또한 그 안에 있었다. 그런 것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어떻게 하면 이들만큼 잘할 수 있나 고민했다. 그러다 점점 이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 가슴을 뜨겁게 하던 것들은 이런게 아닌데. 속이 꽉 차서 끊임 없이 이야기가 나오는 것들인데...’ 하고.
이제는 모든 것에 실눈 뜨고 한발 물러서서 들여다보게 된다. ‘이걸 만드는 사람은 어떤 마음과 진심을 가졌나?’ ‘이것의 진짜 가치는 뭔가?’ ‘이놈이 진짜인가?’. 사실, 진짜 내 마음에 와닿는 것들 앞에서는 이런 고민을 할 겨를조차 없다. 심장이 먼저 뛰기 때문이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진짜다.
여기까지 읽은 님의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을 예상해보겠다.
Q1. 전혜림이 뭔데 트렌드를 평가하고 깎아내리나?
A1. 그러게… 홍보업무 경력이 고작 1년이니 사실 뭐 되지는 않는다.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모든 게 다 별로라는 것도 아니다! (좀 비겁한가ㅎㅎ;) 이런 현시대를 잘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세상을 조금 불편하게 사는 걸지도 모른다.
Q2. 그래서 도대체 진짜가 뭔데?
A2. 아직 정확히 정의할 수 없다. 이 뉴스레터 제목이 ‘진짜가 뭔지 알려드립니다.’가 아니라 ‘진짜를 찾아서’인 이유다.
Q3. 그럼 전혜림이 좋아서 여기 적는 건 진짜라는 건가?
A3.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적어도 나한테 ‘진짜’이다. 그게 님에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님이 내 이야기를 듣고 판단할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님의 ‘진짜’는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는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을 쫓아다니는 데에는 도가 텄다. 진짜 찾기 전문가 지망생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온갖 체력을 끌어모아서 진짜를 찾아 다닌다. 지난 2019년 가을학기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갔을 때는 ‘화수목’ 수업 듣고 ‘금토일월’에는 큰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진짜를 탐색했다. 당시는 세상이 궁금해서 돌아다닌 거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발견한 것들이 다 ‘진짜’였던 것 같다. 평소에도 비슷하다. ‘너 헤르미온느니? 몸이 도대체 몇 개인 거야.’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니?’ 이런 소리를 달고 사는 나. 여기저기 쏘아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를 보러 다닌다. 앞으로도 비슷할 것이다. 1년 동안 파리에 살면서 내가 궁금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 열심히 몸을 움직일 예정이다.
물론 겁이 나기도 한다. 내가 만드는 콘텐츠 또한 빛 좋은 개살구일까 봐 걱정이 된다. 뭐… 정말 그럴 수도 있다. 이 긴 이야기 끝에 마주하게 되는 나의 모습들이 내가 싫어하는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경계하고 싶다. 님이 지켜보고 있으니, 더 열심히 검열하면서, 최선을 다해 기록을 남겨볼 것이다. 진짜를 찾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