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것, 하지 않는 것. 세 가지 중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하지 않는 것’이다. 할 이유가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고, 완벽하게 시작할 능력도 없고, 무엇보다 굳이 안 할 수 있는데, 나는 한번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면 포기를 못 한다. 뉴스레터도 그런 일 중 하나였다.
1년 넘게 프린트 베이커리에서 매달 웹진 글을 쓰고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그냥 내 이름으로 글 쓰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회사의 이익과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충돌하면 간절해지기도 했다. 적당히 대중적이면서 다분히 개인적인 뉴스레터 플랫폼에서 내가 보는 세상을 공유하고 싶었다. 물론 글로 먹고 살 만큼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회사 뉴스레터에 대한 좋은 후기가 올라오고, 웹진 글이 잘 읽히고 있다는 소식을 건너 들을 때면, 내가 읽을 만한 글을 쓴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품고 살다가 작년 11월 말 인스타그램에 공공연하게 발표했다. 뉴스레터 한다고. 선언해야 시작할 것 같았다. 그치만 다녀와서 세 달 넘게 시작을 못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 60%, 게으름 40%로 미뤄졌다. 3월이 넘어가니 부작용으로 ‘하고 싶다’보다 ‘해야 한다’가 커져 버렸다. 고민이 많아졌다. 그러다 진행 중인 사이드 프로젝트 ‘적당사(적당히 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하는 모임)’ 회의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2023.3.2
“뉴스레터 진짜 시작해야 하는데…” 그럼 영재(적당사 멤버)는 질문을 던져준다.
“왜 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나는 영재의 머리를 대신 굴려 뉴스레터 기획을 시작한다. 질문받고 생각하고 답한다. 그때마다 그의 피드백은 항상 따끔하고 정확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너무 기본적인 질문 아닌가? 저것도 생각 안 하고 뉴스레터 하고 싶다고 떠들었단 말이야?’ … 부끄럽다. 아예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고민한 적은 없던 것 같다. 평소에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일단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드문드문 필요한 고민을 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뉴스레터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목적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여. 그것부터 정하면 뭘 쓸지도 명확해질거야.”
“근데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근데 그냥 시작하는 것보다 고민하고 시작하면 더 좋지 않을까?”
맞다… 나는 좋은 친구를 두었다. 마음만으로 시작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영재와 한 대화를 곱씹으며 잠들었다. 걱정돼서 여러 번 깼던 것 같다.
2023.3.3
다음날에는 5월 베니스 비엔날레 여정(off.to.venice)에 함께할 동료들을 만났다. 여행 계획을 짜다가 J형 인간에 대한 대화가 시작됐다. 어쩌다 보니 J인 나는 내 다이어리를 꺼내 보여주었다. 빽빽하게 적어둔 그날의 할 일 사이에 반복적으로 보이는 글씨가 있다. 이게 한 3일에 걸쳐 있는데 했다는 표시는 안 되어 있다. “뉴스레터!!” 재용님이 손가락으로 그걸 콕 집는다. 나는 머쓱해하면서 말했다. “아직 목표 설정이 안 된 것 같아요. 왜 해야 하고 뭘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러고 나니 양옆에서 이렇게 소리친다. “그걸 쓰세요!!! 고민하는 걸 쓰세요.”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궁금해할까요?”
“당연히 아니죠.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궁금해하지 않아요. 그니까 내가 써야죠.” “그러다 구독자가 안 모이면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멤버 중에는 재용님과 뉴스레터에 관해 이야기를 가장 자주 나눈다. 그는 개인 뉴스레터를 발행 중이기도 하고, 지인 중에도 발행인이 많기 때문이다. (박재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이건 본 시즌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재용님이 이런 말을 꺼내셨다.
“저는… 조금이라도 더 어렸을 때 작은 실패를 더 많이 해볼 걸 하는 생각을 해요. 실패한 걸로 데이터를 더 많이 쌓을 수 있었을 거고, 그럼 지금 뭔가를 할 때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을테니까요.”
“오..저도 방금 어떤 글을 읽고 용기를 받았어요. 이동진 평론가 아시죠? 그분이 쓰신 『이동진 독서법』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99퍼센트의 창작자는 어떤 주제를 말하기 위해 영화를 찍지 않아요. 그냥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를 찍다 보면 거기에 주제도 있고, 질문도 던지고, 여백도 있고, 성찰도 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냥 이야기를 하려고요. 이걸 읽으니까 부담이 좀 사라졌어요. 용기도 생기고요.”
“음, 맞는 말이네요. 저도 생각나는 게 있어요. 몇 년 전에, NYT같은 매체에도 자주 글을 기고하는… 제가 좋아하는 록산 게이Roxanne Gay라는 필자가 글쓰기 특강*을 했어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일단은 써야지 고칠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 쓰라!’ 미국은 큰 나라라서, 필자를 찾는 구인 사이트가 있다고 해요. 거기에서 자주 안 써 본 글로 도전해보기도 한데요. 차갑게 거절 당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거절된 글은 자기 블로그에라도 올린다고… ‘천하의 록산 게이도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그러던 중, 그의 파트너인 새롬님에게 전화가 왔다. (새롬님도 베니스에 함께 가신다. 나와도 아는 사이이다.)
“새롬님, 혜림님이 뉴스레터 시작한대요. 시작하면 우리 같이 구독해요. 근데 고민이 많은가 봐요.”
“(수화기 너머) 혜림님..! 근데... 안해도 돼요. 안하는 방법도 있어요.”
아, 안 해도 되는구나. 나한테 그런 선택지는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그 선택지를 지운 거였다. 그날 깨달은 것이 바로, 내가 ‘하지 않는 것’을 가장 못 한다는 사실이었다.
2023.3.10
그로부터 며칠 후. (아직도 시작 안 함) 절친 하연이에게 조언을 구했다. 마음은 먹었지만, 여전히 고민거리였기 때문이다. 하연이는 다 좋은데 포지셔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조언해줬다.
“네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충분히 특별한 걸 나는 알겠는데, 지금 네가 말한 정도로는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 아무개의 블로그 일상글과 다를 게 뭘까? 네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네 일상이 ‘어떤 부분에서 남들과 다르고 특별한지, 사람들이 왜 네 얘기를 들어야 할지’를 더 고민해봐. 이건 너에 대한 고민이야. 너를 잘 알아야 컨텐츠로 삼지. 콘텐츠가 범람하는 요즘은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내공이 쌓인 사람들의 창작물이 궁금하더라!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라면 더더욱.”
내 친구들은 어쩜 이렇게 다 똑똑할까? 그들이 뉴스레터 길을 대신 닦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혜림은 … 뭐가 특별하지?
(다음 편지에서 계속)
|